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노버 왕조 (문단 편집) == 동군연합 해체 이후 ==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이후로 하노버 왕가의 하노버 왕위와 영국 왕위가 분리되었다. 영국 왕실의 왕위 계승은 연장자가 아니라 직계 우선에 여계 상속도 인정이 되는 터라 [[조지 3세]]의 3남인 [[윌리엄 4세]]가 죽고[* 조지 3세의 장남 [[조지 4세]]는 후손이 없고(외동딸이 있는데 일찍 사망) 차남은 요절] 조지 3세의 4남 켄트 공작의 딸 빅토리아 여왕이 물려 받지만 [[살리카법]]상 독일에서는 여성의 왕위계승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지 3세의 5남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 영국 작위는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 그의 후손인 하노버의 군주들은 영국 작위인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을 계속 상속받다가 1917년 작위박탈법에 의해 작위를 상실했다. 그 직전 컴벌랜드 공작위의 주인은 [[조지 2세]]의 3남 [[윌리엄 오거스터스]] 왕자였는데, 독신이라서 당대로 단절되었고 이후 테비엇데일이 덧붙여져서 새로 창시되어 내려진 것이다.]가 하노버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후 영국계의 하노버 왕조는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의 가문인 독일의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Sachsen-Cobourg und Gotha)[* [[영어]]로는 색스-코버그-고타 가문. [[베틴 가문]] 에른스트 계열(장자계열)의 막내뻘 가문으로, [[불가리아 왕국]], [[포르투갈 왕국]]의 왕위를 차지했으며 현 [[벨기에]] 왕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조지 5세]]가 즉위한 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험악해진 [[독일 제국]]에 대한 국민 감정을 고려하여 1차대전 중인 1917년 독일색을 지우고, 왕조명을 별궁의 이름인 윈저로 개칭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남자로 태어나거나 아예 태어나지 않는 등, 영국과 하노버 왕국의 동군연합이 더욱 오래 지속되었다면이라는 IF성 떡밥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군연합이 지속되었다 하더라도 프로이센에 극히 부정적인 [[바이에른 왕국]]의 [[비텔스바흐 가문]]조차 [[오스트리아 제국]]을 편들다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이긴 이후 프로이센 주도의 [[소독일주의]](Kleindeutsche Lösung)에 굴복했기 때문에 독일 통일에 방해로만 작용했을 거란 주장은 큰 설득력은 없다. 당장 하노버 왕국을 차지한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의 후손들이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들다가 왕국이 점령당해 추방되었고, 하노버 영토를 되찾고자 절치부심하다가 [[빌헬름 2세]] 때 화해하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가 빌헬름 2세의 고명딸 [[빅토리아 루이제 폰 프로이센]]과 혼인하여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을 상속받아[* 하노버 가문은 앞서 언급한 대로 원래 브라운슈바이크 가문 출신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대가 끊어졌기 때문에 친척으로서 권리가 있었다. 즉 아무 연고 없이 상속받은 게 아니다.] [[슈탄데스헤어|독일제국 내 통치 가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영국 국민들의 반감을 사서 1917년 작위박탈법에 따라서 영국 귀족 작위를 잃어버렸고, 독일 제국이 패망하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공작위도 날아가서 완전히 몰락했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비공식적으로 독일 구 왕족, 귀족, 선제후 가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일부는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 먹고 잘 산다(...). 하노버 가문만 하더라도 1961년까지 그 유명한 헤렌하우젠 궁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대부분 팔아치운 현재에도 일부 소유 중이다. 어쨌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1931년 들어 다시 영국 왕족임을 '자칭'했고(성씨에 Königlicher Prinz von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Großbritannien und Irland]][*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을 기점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해체된 상황에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의 독일식 표현을 추가한 것 자체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받아들였다면 성씨에 추가한 말에는 독일어로 [[북아일랜드]]를 뜻하는 Nọrd•irland가 들어갔을 것이다.]를 추가했다.), 1957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는 영국 정부와의 소송에서 승소해서 영국 국적도 취득(즉, [[이중국적]])하였다.[* 팔츠의 조피(소피아 : 위의 그 조피와 동일인물)의 후손이면 영국 국적과 왕위계승권을 얻을 수 있음을 규정한 소피아 귀화법(Sophia Naturalization Act 1705)은 1948년 폐지되었지만, 법 폐지 이전에 태어난 개신교인 후손이 영국 정부에 신청하면 영국 국적을 얻는 게 가능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는 1914년생.] 단 1917년 날아간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 작위는 여전히 불인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